고령 환자 ‘결박’… “겪어본 사람만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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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환자 ‘결박’… “겪어본 사람만 이해”
  • 광주타임즈
  • 승인 2018.02.0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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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줄 꽂자마자 빼버려… 재삽입 환자 더 고통” 치매 노인, 대변을 손으로 얼굴에 문지르기도
[사회=광주타임즈]=스프링클러 미비, 자동방화문 미설치, 결박으로 인한 구조 지연. 39명이 사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 요인들이다.

다양한 문제점 중 고령 환자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결박이 하나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세종병원과 같은 일반병원에 결박 관련 규정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보건복지부는 일반병원에서의 결박 현황 점검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필요악’인 결박이 구조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환자 가족 “결박 결정, 겪어본 사람만 이해”

결박은 침상에 환자의 손을 신체보호대로 묶어두는 조치다. 제어가 불가능한 환자에게 산소마스크, 튜브 등 의료기구를 고정하거나 자해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다.

조모(60)씨는 “나도 예전에 큰엄마 병문안을 갔을 때 손을 침대에 묶어 놓은 것을 보고 ‘왜 저렇게 해놓느냐’며 울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입원해보니 어쩔 수 없더라”고 말했다.

조씨의 아버지는 지난해 경기 고양시의 한 일반 병원에 2달 동안 입원했다. 치매 증세가 있었던 아버지 조씨(89)는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코에 낀 튜브(콧줄)를 하루에도 몇 번씩 잡아빼고 병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의료진은 결박을 권했고 조씨 가족은 받아들였다.
조씨는 “치매기가 있는 노인 환자의 경우 대변을 손으로 얼굴에 문지르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상황은 겪어본 사람들만 이해할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6월 할아버지를 잃은 대학원생 표모(26)씨도 같은 경험을 했다. 표씨는 “결박 끈을 풀 수 없도록 벙어리 장갑을 끼워놨는데 자꾸 그 손을 들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미어졌다”고 회상했다.

그렇지만 당시 84세였던 할아버지는 산소와 음식물을 공급하는 콧줄을 수시로 잡아뺐다. 재삽입 과정에서 환자의 고통이 컸다.

간병인과 의료진은 환자를 묶어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 의사인 표씨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도 동의했다.

표씨는 “당시 상황을 보면 결박은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조치였다”고 말했다.

■ “한 번에 풀리도록 결박 이뤄져야”

화재 등의 비상사태에서 결박이 구조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사실이다.

최만우 경남 밀양소방서장은 지난달 27일 “일부 환자들이 태권도 끈 같은 천으로 묶여 있어 이를 푸는 데 30초에서 1분 정도 소요됐다”고 밝혔다.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결박은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구해 쉽게 풀 수 있는 방법으로 신체보호대를 사용해야 한다.

의사는 처방전 형태로 신체보호대 사용 사유·방법 등을 적어야 한다.

다만 이는 요양병원에만 적용된다. 지난 2014년 전남 장성요양병원 화재 당시 환자 2명이 침대에 묶인 채 사망한 이후 생긴 규정이다.

일반병원의 경우 강제성 있는 결박 관련 규정이 없다. 안전뿐 아니라 환자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도 관련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찍찍이 소재나 재빨리 풀 수 있는 매듭으로 결박 조치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피해가 커진 원인은 직통 계단과 자동방화문 미설치 등이다. 결박은 부수적인 요인”이라며 “다만 응급상황에서 대피가 빨라지도록 밴드 등의 도구를 쓰거나 외부에서 잡아당기면 한 번에 풀리는 상태로 결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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