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고문·인권유린 상처 38년간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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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고문·인권유린 상처 38년간 여전”
  • 광주타임즈
  • 승인 2018.05.0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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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가두방송 차명숙 “너 같은 건 총 맞아 죽었다고 보고하면 그만이야” 협박
“고문수사·잔혹행위 대한 진상 철저히 조사하고 관련자 처벌해야 한다” 요구


[광주=광주타임즈]차상윤 기자=“‘너 같은 건 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고 보고하면 그만이야’ 38년전 수사관이 했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5·18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고문을 당한 차명숙씨는 지난달 30일 38년전의 아픔을 잊지 않고 있었다.

계엄군과 수사기관, 교도소에서 당했던 고문, 인권유린을 이날 오전 광주 서구 광주시의회 3층 브리핑룸에서 공개하며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씨는 1980년 5월19일 계엄군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방송차량에 올랐다. 계엄군의 잔혹한 만행과 상황을 알려야 겠다는 생각에 마이크를 잡고 “계엄군들이 광주시민들을 다 죽이고 있다. 집에서 나와달라”고 호소했다.

거리에서 차씨의 방송을 들은 한 광주시민은 “그때 얼마나 또랑또랑하게 이야기 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차씨는 간첩으로 몰려 체포됐다. 계엄포고령 위반과 내란음모 등의 죄목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1980년 10월27일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차씨는 “병원에서 부상자를 돌보다가 기관원들에게 붙잡혀 505보안대 지하로 끌려갔다.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 여성들의 비명, 고통스런 신음소리, 폭언과 폭행이 가해졌다”고 회상했다.

또 “무릎을 꿇게하고 발로 밟았고 어린 여학생들은 책상위에 앉혀 놓고 물을 끼얹어 가면서 어깨가 빠지도록 몽둥이로 등을 두들겨 팼다”며 “상무대 영창에서 받은 고문으로 인해 하얀 속옷이 까만 잉크색으로 변했다.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교도소 수감 이후에도 고문은 계속됐다며 차씨는 날짜까지 기억하며 증언했다.

그는 “1980년 9월16일 광주교도소로 이감돼 지내던 중 9월30일 오후 5시께 교도관 세 명이 들어와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곤봉을 끼어 양쪽에서 들고 나갔다”며 “이미 한차례 고문을 받고 난 후였기 때문에 2차 고문은 더더욱 두려웠고 그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관들은 이미 정해진 7가지 항목을 정해놓고, 사형까지 받을 수 있다며 협박했다”며 “무엇보다 너같은 것은 거리에서 총맞아 죽었다고 보고서 작성하면 그만이다고 했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광주교도소에서 일주일동안 끔직한 고문수사를 받은 뒤에는 자살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10월2일부터 31일까지 혁시갑을 한 채 징벌방에 보내졌다”며 “징벌방에서 폭 10㎝, 두께 3㎝의 줄을 차고, 가죽수갑을 양쪽 손목에 찬 채 먹고 자고 볼일까지 보면서 짐승만도 못한 상태로 지내야 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몇 년 전에야 수감기록을 떼어보고 제가 다시 잡혀간 이유를 알게 됐다”며 “수감기록에는 1980년 9월21일 오후 8시께 광주교도소 여사1호실에서 같이 수감 중이던 동료에게 불온언사를 발언하였다고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차씨는 고문의 흔적은 출소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평생 몸에서 몸부림 치고 있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그는 “5·18의 기억을 잊기 위해 출소 한 뒤 광주를 떠났다. 경북 안동에 정착해서 찾아오지도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결혼하고 10여년이 지나 두 아들과 함께 광주를 찾았지만 5·18의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아 답답했었다”며 “38년이 된 지금도 당시의 기억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차씨는 “5·18의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가해자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며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1980년 5월에 자행된 고문수사와 잔혹행위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광주교도소는 지금이라도 고문수사와 가혹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5·18민주화운동을 연구하는 단체 등은 아직도 80년의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있는 여성들을 찾아내 소중한 증언을 듣고 역사적 진실로 기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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