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세밑'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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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세밑' 단상
  • 광주타임즈
  • 승인 2016.01.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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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논설위원 고운석=또 한해가 저물었다. 이 맘 때면 올 한해는 어떤 한해였나 돌아보곤 한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파도 기억하고 싶은 게 별로 없기 때문일 듯 싶다. 순수하고 호기심 많던 학창시절에는 모든 것이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무미건조한 일상이 계속되면서 그냥 정신없이 세월만 축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을미년 한 해를 거창한 포부로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의 종착점에 다 와있다.

늘 그렇듯 가슴뛰는 즐거움이나 보람보다는 내세울 것 없는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회한이 앞선다. 이제 곧 어깨에 힘 좀 준다는 사람들은 앞다튀 신년인사와 함께 희망을 담은 각종 사자성어를 쏟아낼 것이다.

1년 전으로 거슬러 가보자. 지난해 12월 대학교수들이 뽑은 2015년 희망의 사자성어는 ‘정본청원(正本淸源)’이었다. 한서(漢書)에 나온 이 말은 ‘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이다.

관피아의 먹이사슬, 의혹투성이의 방위사업, 비선조직의 국정 농단과 같은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아 근본을 바로 세우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였다. 그런데 1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정치판은 올해도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민생은 뒷전이고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그토록 원하던 ‘원샷법(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을 국회가 끝내 외면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통과를 요구했지만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요지부동이었다. IMF를 당해 본 나라로서 위기예방을 위해선데, ‘삼성을 위한 재벌 특별법이어서 통과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거구 획정안을 두고 허구한날 여야 힘겨루기다. 시급한 민생법안은 ‘나 몰라라’하고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올인하며 정치판을 달구고 있다. 조만간 세상을 바꾸고 국민들을 잘 살게 해주겠다며 현혹하는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다. 의원들의 로스쿨 압력의혹이나 ‘갑질출판회’ 등은 국민들에게 ‘금수저’ ‘흙수저’ 논란을 부채질했다. 재계 5위 롯데 그룹의 추악한 경영권 다툼은 서민들의 가슴에 커다란 생채기를 냈다. 온통우울한 이야기 뿐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암울했던 2015년, 꽉막힌 가슴을 뻥 뚫어주는 소식은 먼나라 미국에서 들려왔다. 페이북 창업자 마크저커버그의 기부 소식이다. 보유지분의 ‘99%’, ‘52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에 놀랐다. 언론들은 당장 한국의 부자들과 비교하며 주판알을 튕기느라 바쁘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가 기부의 변으로 내놓은 ‘우리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더욱 마음을 아리게 한다. 저커버그는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딸이 현재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는 부모의 바람을 시작으로 지론을 풀어갔다. 그는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이들의 삶은 동등한 가치를 지난다”며 “우리 사회는 지금 펼쳐진 세상이 아닌 후세대가 살아갈 세상이 더 좋아지도록 하기 위해 투자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저커버그는 “단지 우리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는 다음 세대의 모든 아이들에게 도덕적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지구상의 모든 이들을 연결하겠다’는 원대한 꿈에서 출발한 페이스북 창업자다운 발상이지만 한편으로는 31살 청년에게서 나오기 힘든 ‘통큰’ 생각이기도 하다. 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작지 않다. 2016년 이 맘 때에는 한 해가 가버린다는 아쉬움보다 새로운 희망을 품는 세밑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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